2009년 09월 07일
The great gatsby
친구 용민의 블로그에서
The Great Gatsby..
요 포스팅을 보게 되었고
살 수 있는 영광을 준 존슨경에게
영광이 있으라. VIVA Johnson, ジョンソン殿に栄光あれ
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있냐고
누가 묻거든
난 무라카미 하루키(村上春樹)의 노르웨이의 숲
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.
대학시절 같은과 친구 우신에게 그 작가 또라이야 라는
말에 매력을 느꼈을까?
난 당장 노르웨이 숲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
보게 되었다.
여태까지 읽었던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
놀라운 흡입력과 수 없이 읽었던 만화책의 세계보다
더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로 날 인도해준 것이 바로
노르웨이의 숲이었다.
그래서 그 날 이후 난 하루키의 장편 소설, 단편 소설, 수필에
이르기까지 거의 학교 도서관에 있는 것들을 다 읽어보게
되었고 일본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
일본 문학사라는 일본어 전공수업도 들어가보게 되었다.
뭐 여튼 그런 이야기를 쓰려고 한 건 아니고
그 노르웨이의 숲에 보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
언급이 나와있다.
존 F 케네디의 암살범으로도 유명한 오스왈드의 방에서
나왔던 소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.
여튼 그 소설은 99년 내가 그 책을 읽어 본 뒤로 부터
쭈욱 읽어보아야 겠다고 결심을 했으나
영문학 소설은 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의 세계를
이해하지 못하고 번번히 못 읽고 하차해버린 경우가
많아서 위대한 개츠비 역시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닐까 하며
지레 짐작하여 읽어보지 못하였다.
그러던 중에 주석이 너무나도 잘 달린 번역본이 나왔다는
친구 용민의 블로그의 소개를 보게 되었다.
그 당시 한국에 가있던 성민이의 도움으로 이 책을
손에 넣었는데
정말 난 이 책을 보면서 개츠비라는 작자가
황금빛 밀짚모자를 쓰고 1900년대 초 미국의 면화 농장을
일구며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소설이라고
생각해왔었던 상상을 완전히 깨주었다.
근데 왜 난 그런 상상을 한 것일까?
아마 종로 서적에 위대한 개츠비를 사러 갔다가
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을 보아서 일지도 모르겠다.
여튼...
이 소설을 보면서 느낀 점은
남자의 순정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.
거참 나랑 똑같은 뻘짓거리를 했던놈이 1920년대 미국에도
있었구나...
라는 생각 말이다.
자신의 짝사랑(짝사랑이라고 해야하나) 상대를 자신의
저택에 초대하기 위해
그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라던가
결국 데리고 왔는데
그 자리까지 나가는데 보이는 찌질함이라던가
결국은 자리에 앉아서는
뻔뻔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에서
내가 했던 모습과 별 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
난 이 소설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.
한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고, 그 사람을 위해서
모든 것을 불사했던 한 사람의 삶..
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
찌질하기만 했던 그 사람.
놀라운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으로도 뛰어넘지 못했던
그 무언가에 짓 눌러살았던 그 사람
그리고 그와 적대시 되는 사람
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으나
개츠비가 자신의 인생에 등장함 함께 자신이
쌓아올렸던 모든 것들이
와르르 무너지려고 하는 것을 지키려고 했던
또 하나의 찌질남간의...
위대한 찌질배틀
이게 남자의 삶아닐까?
물론 이제 29년 6개월 정도 살아가고 있는 내가
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
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가 나와 비슷했기 때문에
좀 더 흡입력이 있던 것 같다.
여튼...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을 보게 된 것 같다.
이제 피츠 제럴드의 소설을 몇 개 더 찾아볼까?
The Great Gatsby..
요 포스팅을 보게 되었고
살 수 있는 영광을 준 존슨경에게
영광이 있으라. VIVA Johnson, ジョンソン殿に栄光あれ
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있냐고
누가 묻거든
난 무라카미 하루키(村上春樹)의 노르웨이의 숲
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.
대학시절 같은과 친구 우신에게 그 작가 또라이야 라는
말에 매력을 느꼈을까?
난 당장 노르웨이 숲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
보게 되었다.
여태까지 읽었던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
놀라운 흡입력과 수 없이 읽었던 만화책의 세계보다
더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로 날 인도해준 것이 바로
노르웨이의 숲이었다.
그래서 그 날 이후 난 하루키의 장편 소설, 단편 소설, 수필에
이르기까지 거의 학교 도서관에 있는 것들을 다 읽어보게
되었고 일본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
일본 문학사라는 일본어 전공수업도 들어가보게 되었다.
뭐 여튼 그런 이야기를 쓰려고 한 건 아니고
그 노르웨이의 숲에 보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
언급이 나와있다.
존 F 케네디의 암살범으로도 유명한 오스왈드의 방에서
나왔던 소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.
여튼 그 소설은 99년 내가 그 책을 읽어 본 뒤로 부터
쭈욱 읽어보아야 겠다고 결심을 했으나
영문학 소설은 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의 세계를
이해하지 못하고 번번히 못 읽고 하차해버린 경우가
많아서 위대한 개츠비 역시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닐까 하며
지레 짐작하여 읽어보지 못하였다.
그러던 중에 주석이 너무나도 잘 달린 번역본이 나왔다는
친구 용민의 블로그의 소개를 보게 되었다.
그 당시 한국에 가있던 성민이의 도움으로 이 책을
손에 넣었는데
정말 난 이 책을 보면서 개츠비라는 작자가
황금빛 밀짚모자를 쓰고 1900년대 초 미국의 면화 농장을
일구며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소설이라고
생각해왔었던 상상을 완전히 깨주었다.
근데 왜 난 그런 상상을 한 것일까?
아마 종로 서적에 위대한 개츠비를 사러 갔다가
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을 보아서 일지도 모르겠다.
여튼...
이 소설을 보면서 느낀 점은
남자의 순정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.
거참 나랑 똑같은 뻘짓거리를 했던놈이 1920년대 미국에도
있었구나...
라는 생각 말이다.
자신의 짝사랑(짝사랑이라고 해야하나) 상대를 자신의
저택에 초대하기 위해
그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라던가
결국 데리고 왔는데
그 자리까지 나가는데 보이는 찌질함이라던가
결국은 자리에 앉아서는
뻔뻔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에서
내가 했던 모습과 별 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
난 이 소설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.
한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고, 그 사람을 위해서
모든 것을 불사했던 한 사람의 삶..
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
찌질하기만 했던 그 사람.
놀라운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으로도 뛰어넘지 못했던
그 무언가에 짓 눌러살았던 그 사람
그리고 그와 적대시 되는 사람
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으나
개츠비가 자신의 인생에 등장함 함께 자신이
쌓아올렸던 모든 것들이
와르르 무너지려고 하는 것을 지키려고 했던
또 하나의 찌질남간의...
위대한 찌질배틀
이게 남자의 삶아닐까?
물론 이제 29년 6개월 정도 살아가고 있는 내가
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
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가 나와 비슷했기 때문에
좀 더 흡입력이 있던 것 같다.
여튼...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을 보게 된 것 같다.
이제 피츠 제럴드의 소설을 몇 개 더 찾아볼까?
# by | 2009/09/07 15:58 | 트랙백 | 덧글(4)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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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 말고 호밀밭의 파수꾼이랑 백경 읽어보시게
안돼 !!! 인정할수 없음이삼.